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리 앙투아네트(베르사이유의 장미) (문단 편집) === 오스트리아의 공주 ===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란츠 1세]]의 막내딸로 첫 등장하며 [[오스칼 프랑소와 드 자르제|오스칼]]과 [[한스 악셀 폰 페르센|페르젠]]과 비슷한 해에 태어났다. 다른 유럽의 왕실들과 달리 쓸데없는 허례허식을 배제하고 자유롭고 가정적인 분위기를 추구한 당시 오스트리아 왕실에서 자란 영향으로 악녀는 커녕 상냥하고 순진한 인품[* 로잘리도 마리 앙투아네트를 소문대로 악녀라고 생각해 그녀를 꺼렸으나, 실제로 만난 마리가 소문과 달리 우아하고 다정한 것을 보고 당황했다.]을 가졌지만 동시에 당시 강대국인 오스트리아의 공주이자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로서의 강한 자존심[* 이 자존심은 시할아버지 [[루이 15세]]의 정부인 [[뒤바리 부인]]에게 절대 말을 걸지 않는 것(신분제였던 당시 프랑스 귀족 사회에서는 신분이 높은 귀부인이 먼저 말을 걸어주기 전에 신분 낮은 귀부인이 말을 걸 수가 없었다.)과 이후 메르시 백작의 설득으로 마지못해 말을 건 후 [[오스트리아]]의 [[공주]]이자 일국의 [[왕세자비]]인 자신이 천민 출신 애첩에게 졌다며 결국 뛰쳐나가 울었던 에피소드에서 잘 드러난다.]을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성품과 별개로 어릴 때부터 워낙 놀기를 좋아하고 공부나 힘든 일과 깊게 생각하는 걸 싫어하다 못해 피하려 했다는게 큰 단점이었다. 이러다보니 공부 시간 내내 집중을 하지 못하는 걸 넘어 애교와 꾀를 피워 선생님들을 속여 수업을 피하곤 해서, 마리 앙투아네트를 가르친 선생님도 "마리 님은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지만 열정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라고 한탄했을 정도다. 심지어 [[동맹의 역전|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혼인 동맹]]이 체결되어 어린 나이에 프랑스의 왕세손비가 되는 것이 결정되었을 때조차 마리는 춤을 제외하면 왕족으로서의 기본 소양인 프랑스어, 역사, 정치를 비롯해 모든 면에서 일자무식 상황이었다. 결국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도 막내딸의 무식함에 경악하여 뒷목을 잡고 가장 좋은 선생님들을 데려와, 공부를 빡세게 시키고 오스트리아를 떠나기 전 몇주 동안 딸과 함께 지내며 직접 가르쳤다. 그래도 철부지 딸이 끝까지 걱정되었던 마리아 테레지아는 오스트리아를 떠나는 당일 자신이 직접 쓴 지침서를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읽어보라고 주고, 측근인 메르시 백작까지 프랑스로 함께 보내며 이후에도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받으면서 온갖 노력[* 실제 역사에서도 마리아 테레지아는 시집간지 7년 가까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생리|대자연]]이 찾아왔다"라는 사생활까지 감독하는 편지를 받을 정도로 막내딸을 많이 신경썼다. 게다가 아들 [[요제프 2세]]처럼 프랑스의 불안한 현실을 직감해서 사돈인 [[루이 15세]]의 서거 소식을 듣자마자, 메르시 백작에게 마리를 지켜봐달라고 당부하고 동시에 내 딸의 행복한 나날은 이제 끝났을지도 모른다라는 불안한 예견을 남겼는데 이 예견은 최악으로 이뤄지고 말았다.]을 기울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런 어머니의 당부를 끝내 이해하지 못했고 이는 그녀의 비극적인 최후에 일조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